남아공의 영웅 하면 단연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는 무려 27년이나 감옥에서 지냈다.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흑인들에게 그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백인 정치인들은 그를 죽이고자 했다.
그래서 같은 흑인들을 감옥에 넣어 만델라에게 접근하게 했다. 그리고 만델라를 부추기게 했다. 흑인의 지도자이니 감옥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탈옥해야 한다. 나가면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그에게 탈옥을 부추기게 했다.
만약 만델라가 탈옥을 한다면 그를 탈옥 죄를 씌워 죽이려 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만델라는 여러 번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그도 살고 흑인들도 살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에 부딪힌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유혹을 받지 않으셨던가? 우리들도 그런 유혹을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도 여러 가지 유혹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작은 유혹이기에 쉬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작은 유혹이야 말로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큰 유혹에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유혹이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유혹은 잘 보이지도 않고 설사 보인다 해도 영향이 미미하기에 경계심도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작은 양보가 결국 자신의 삶을 갉아먹게 된다. 조그만 큼으로 인해 제방이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삶에는 나름의 원칙이란 게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름의 삶의 원칙이 있다. 작은 유혹에 양보한다는 것은 그런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틈이 제방을 무너뜨리듯 그런 작은 양보가 자신의 삶을 허물 게 된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만 받으신 게 아니다. 제자에게서도 유혹을 받으셨다. 베드로가 십자가 죽음은 안 된다고 꾸짖기까지 했다. 베드로가 보기에 메시아가 그런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더구나 꾸짖듯이 항변했으니 아주 크게 예수님을 도발한 것이다.
예수님이 보기에 베드로의 유혹은 간단한 작은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사탄도 아닌 일개 인간의 유혹이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단호하셨다.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 사탄급의 큰 문제가 아니라 조그만 생활의 유혹에 단호해야 한다. 한번 무너지면 제방이 무너지듯 내 삶이 무너질 수 있다. 일상의 조그만 유혹에 왜 질까?
아 정도야 하는 방심, 나 정도면 하는 교만,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아닐까? 이런 것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학이나 종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의 중심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한 토대 위에 자신의 경험과 어우러져 삶의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