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들의 도시, 인간의 연약함

주제 사마라구의 대표작 <눈먼자들의 도시>에 대해 써 본다. 소설은 잘 읽지 않는데 이 소설은 매우 깊이가 있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장애 등급

장애도 등급이 있다. 이는 주로 보험사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장애를 입었을 경우 그 장애의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 장애가 클수록 보험금이 많이 지급된다. 최대 가입한 보험금 전체가 지급된다. 만약 장애가 적다면 보험금 역시 적게 지급이 된다.

 

예전에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것인데 비록 사망하지는 않았어도 장애를 입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 그때 안 것인데 양쪽 귀의 청력을 잃게 되면 장애등급은 80%다. 그러나 양쪽 시력을 잃었다면 장애등급은 100%가 된다.

 

그만큼 본다고 하는 것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면 사망한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눈먼자들의 도시 독후감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상실하게 하는 전염병이 도시를 휩쓴다. 퇴근하던 회사원도, 밥을 짓던 가정 주부도, 일을 하던 은행원도, 운전을 하던 택시 기사도 갑자기 시력을 상실한다.

 

이 전염병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도시 전체에 퍼지고 긴급히 이들을 위한 수용소가 마련되나 사실상 전염을 막기 위한 격리 조치였다.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
눈먼자들의 도시

 

사실상 버려진 이들. 이들이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지키는 군인들. 그러나 이들 군인들도 결국엔 감염이 되어 맹인이 된다.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화장실 이용도 힘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나 마찬가지인 수용 병동이 되고 만다.

 

이들 중에는 안과의사도 있었는데 의사 역시 전염이 되어 맹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이상하게 시력이 멀쩡했다. 병균에 노출되어도 감염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돕기 위해 맹인인 척하고 같이 수용 병동에 온 것이다. 그리하여 눈먼 자들이 가득한 곳에 볼 수 있는 자 한 명이 있게 된다.

 

소설은 안과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눈먼자들의 세상이 얼마나 연약한 인간의 세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 같이 보이지 않는 지옥 속에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이 나오고, 거짓을 말하는 인간들도 나온다.

 

그들은 그저 생존 욕구에 매달려 동물의 본능으로 살기 위해 바둥거린다.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대장 노릇하며 배급된 식사를 가로채는 깡패 집단. 심지어 밥을 먹으려면 돈과 패물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 것들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겠는가? 작가는 깡패집단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 야만성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인간다움은 어디에

그러나 아무리 원시적 환경이라 해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눈먼자들의 도시 역시 인간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안과의사와 그의 아내이다. 안과의사는 힘든 상황이지만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질서가 없다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본능과 이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눈먼자들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한다. 그녀는 스스로 위험에 뛰어들며 어떻게든 그들을 도우려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눈먼자들은 서서히 질서를 찾아가고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인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곳에 있다. 소설은 그러한 과정을 매우 잘 그려내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왜 갈대라고 했는가?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대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비록 연역하여 환경에 영향을 받고 쉽게 좌절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부러지지 않는 심연이 있다. 이성이라고 하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이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이성의 작용이 없으면 생물학적으로는 동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라도 인간으로서의 자연적인 존엄성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성이 없다면 그 존엄성을 지켜낼 힘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들도 많지만 그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인간들도 많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그런 것 같다. 대통령 선거는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었다.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을까?

 

문제는 과연 어느 쪽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집단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일까? 둘 다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닐까?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부터 잘 보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질서를 부여하고 희생을 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양쪽이 모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래본다.